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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세비야 대성당이 문여는 2시 30분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대성당 앞 광장을 산책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서 그런지 대성당 앞에는 성경 구절에 나오는 내용들을 표현한 모형들을 팔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마켓에서 마굿간에서 태어나는 아기예수, 성모 마리아, 동방 박사 조형물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광장 뒤편에는 세비야 시청이 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시립 음악대가 캐롤과 여러 클래식 음악들을 광장에서 연주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징글 벨도 같이 연주했고, 여러 클래식 음악들도 연주했다. 음악적 지식이 짧아서 모든 음악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비발디의 사계나 베토벤의 운명 같은 엄청나게 유명한 곡들도 연주하여서 나름 볼 맛 이 나는 거리 연주였다. 시립 음악단이라서 그런가 꽤 퀄리티도 높았는데 무엇보다 이런 공연을 길거리에서 무료로 해준다는 것이 감사했다.

이렇게 연주를 어느정도 보고있다보니 시간이 흘러 오후 2시가 되었다. 세비야 대성당은 찾는 사람이 많아서 줄이 길기 때문에 미리 가서 줄을 섰다.

입장 30분 전임에도 줄이 입구 밖까지 서있었다. 그래도 입장시간이 되니 빨리 줄어들었다. 어느새 성당 입구까지 왔고 티켓을 사서 들어갔다. 티켓 가격은 성인 11유로지만 나는 국제학생증을 제시하여 4유로에 들어갔다. 역시 유럽여행은 국제학생증 만들어 가는게 좋은 것 같다.

드디어 성당안으로 입장 완료 저 뒤편의 황금 장식장이 눈에 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성체를 올려놓고 보관하는 성체 현시대이다. 중요한 행사 때 혹은 미사 때 간혹 쓰인다고 한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꼭 보고 나가야 하는 것 바로, 콜럼버스의 묘이다. 대항해시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여 무적 함대 스페인의 위상을 높였던 콜럼버스의 관이 세비야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물론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에게는 재앙의 시작이였겠지만, 스페인에서 그는 중세 유럽 스페인의 부흥을 이끌었던 사람 중 한명이다.

콜럼버스의 관은 중세 시대 스페인의 4개 왕국 왕들이 받들고 있다. 이렇게 제작한 이유는 콜럼버스의 유언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금, 향신료, 노예들을 데리고와서 스페인의 부흥기를 이끌었지만 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이사벨 여왕이 사망한 뒤 가톨릭 교단은 그에게 노예와 관련된 윤리적 행동에 문제를 삼아 그의 재산과 명예를 전부 뺏어버린다. 항해 중 얻었던 불치병과 이로 인한 화병까지 얻은 콜럼버스는 결국 얼마 못 가 사망하고, 이런 유언을 남긴다.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 라고 그래서 그는 쿠바에 묻혔다가, 쿠바가 해방되고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옮겨졌지만 도미니카 역시 해방되면서 결국 그의 관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고, 그 당시 스페인 4개 왕국(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르)의 왕들이 그의 관을 받들게 설계 했다.

즉 지금 콜럼버스의 관을 받들고 있는 4명이 전부 왕이다. 이 중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앞 2명의 왕은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있고, 뒤 2명의 왕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앞 2명은 카스티야와 레온의 왕들이며 이들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찬성하고 지원해줬고, 뒤 2명은 각각 아라곤과 나바르의 왕들이며, 이들은 반대로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앞 뒤 왕들의 고개를 저렇게 만든 것이다. 

멀리서 봤던 제단을 좀 더 가까이서 찍어 보았다. 가운데 접시에 성체를 올린다고 한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성당의 주요 인물들을 그려 놓은 것 같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저 멀리 보인다.

타원형의 돔이 굉장히 인상 깊어서 찍어 보았다.

세비야 대성당을 둘러 보며 느낀점은 확실히,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대성당답게 볼 거리가 상당히 많았다. 안에 방이 여러개 있는데 이 방에서 또 다른 방으로 들어 갈 수 있다. 이렇게 꼬리를 물며 전부 둘러보니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제 성당 구경을 마치고 히랄다 탑에 올라갔다.

탑 꼭대기로 올라 가는 도중에 이렇게 밖을 볼 수 있게 창문을 만들어놨다. 그리고 올라가는 길은 계단이 아니고 완만한 평지 오르막이다. 그래서 다른 탑에 비해 올라가는게 좀 더 수월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 꼭대기에서는 사방의 세비야 시내를 모두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콜로세움 같은 원형 경기장은 바로 투우장이다. 나는 12월에 가서 아쉽게 투우 시즌이 아니여서 보지 못했다. 투우는 3월 ~ 10월 동안 열린다.


밑에는 세비야 대성당의 오렌지 정원이 보인다. 저기 보이는 나무들은 전부 오렌지 나무이다.

확실히 어제보다 날이 맑은 오늘 올라온게 좋은 판단이였다. 햇살을 머금은 세비야 시내는 어제와는 다른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세비야 대성당 방문을 끝냈다. 개인적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다음으로 재미있는 성당 구경이였다고 생각한다. 대성당을 다 보고나서 어제 예약해두었던 플라멩코 공연을 보기 위해 플라멩코 박물관으로 향했다.

플라멩코 박물관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무용 플라멩코의 역사와 무용수들의 삶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여러 예술 작품을 보고 실제 플라멩코 공연도 볼 수 있는 곳이였다. 그림은 넘어진 플라멩코 무용수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플라멩코는 집시들의 애한을 표현하던 춤이다. 춤은 굉장히 짜임새있게 진행되며 여러 사람의 감정을 표현한다. 실제로 기쁨을 표현할 때는 무용수의 표정이 활짝 웃으며 동작이 격렬하고 의상도 붉은색인데 반해 슬픔을 표현할 때는 검은색 의상을 입고 표정 또한 찡그리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플라멩코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은 그라나다 이지만 우리가 아는 화려하고 테크니컬한 플라멩코는 세비야에서 시작되어 세계로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스페인 하면 토마토 축제, 투우, 플라멩코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 중 2가지 투우와 플라멩코가 전부 세비야에서 널리 퍼진 것이다. 왜 세비야를 우리가 알던 스페인의 모습이있는 나라라고 표현했는지 알 것 같다. 

플라멩코 무용수들의 대기실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책상 위에 남자 무용수의 페도라 모자가 눈에 띈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공연을 보기 위해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공연 중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어서 공연 사진은 없다. 하지만,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무용수들의 화려한 발놀림과 우아하고 섬세한 동작들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표정들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깊게 남아있다. 공연 시작전에 박물관 관장님께서 공연 중 에티켓을 영어와 스페인어로 설명해주시고, 플라멩코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주신다. 그리고 "Chinese, Japanese, Korean. No Photo!!" 라고 말하며 금지 포즈와 함께 말한다. (얼마나 이 세 나라 관객들이 찍어댔으면 이럴까 하고 좀 부끄럽기도 했다.)




플라멩코를 다 보고 나서 숙소에 돌아와서 잠시 쉬다가 스페인 광장의 야경을 보기 위해 나왔다. 호스텔 직원이 스페인 광장은 낮에도 아름답지만 밤에도 그에 못지 않은 매력이 있다하여 가보았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임을 도착하자마자 느꼈다. 사실 아침에 방문했을 때 안개가 좀 껴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밤의 모습을 보니 그 아쉬움이 모두 없어졌다. 이거 하나를 다시 보기위해 세비야를 다시 한 번 방문할 목적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사진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이건 직접 가본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 같은 것이다.





스페인 광장의 야경을 마지막으로 세비야에서의 일정 또한 모두 끝이났다. 하지만 세비야의 밤은 앞으로의 여행을 더욱더 설레게 만드는 기폭제였다. 내일은 포르투갈로 넘어가는 날이다. 세비야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며 여행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떠올리고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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